그룹명/시사

[스크랩] bgm) 미국 시리즈 전쟁으로 인해 돈방석에 앉은 나라

kuwait park 2015. 5. 15. 08:36

 

 

 

 

 

 

 

 

 

 

 

 

 

오늘도 <미국의 역사 시리즈> 힘차게 시작해 볼게요.

유명한 역사학자 E.H. CARR의 책 <역사는 무엇인가>에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유명한 글귀가 있습니다.

그만큼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고리이자, 과거에 벌어졌던 일도 언젠가 우리의 미래에 반복될 수 있다는 말이겠죠.

그런 면에서, 미국의 과거 역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로 '강대국의 성장 비밀'을 말이죠.

미국은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세계 최강 국가로 발돋움했어요.

따라서 우리는 미국이 성장한 역사를 매우 유심히 살펴보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과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1910년대부터 미국의 역사를 되짚어 보려 합니다.

현대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두 차례 '세계 대전'은 미국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Let's Go!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 28일에 발발하여, 독일이 항복한 시점인 1918년 11월 11일에 종료되었습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만약 미국이 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계속 '중립'을 유지했다면 독일이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1917년 1차 세계대전 연합국의 일부였던 러시아가 공산혁명으로 인해 전쟁에서 빠지면서 독일은 많은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투입시킬 수 있었습니다.

 
   

 

반면, 연합국은 예비 병력과 전쟁 자원이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이 참전할 무렵, 연합국의 상황은 거의 벼랑 끝에 몰린 것과 같았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참전으로 연합국 측은 암울한 전쟁 분위기를 완전히 탈바꿈하게 됩니다.

 
   

 

미국 효과는 매우 컸습니다. 연합국은 미국이 참전한 이후로 승승장구를 거듭했고, 결국 독일의 최종 항복을 받아냈죠.

 
   

 

그러나 전쟁 승리의 기쁨도 잠시..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장식한 승전국들은, 독일과 같은 패전국들의 사후처리 문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유럽 연합국들 曰
: "패전국들아~ 너네 때문에 우리가 너무 큰 피해를 봤어.. 빨리 돈을 토해내라 어서!!!"

 
   

 

미국 曰
: "오우~ 진정해. 그건 아니야!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우리 너무 가혹하게 대하진 말자. 얘네(패전국)도 먹고 살아야지~"

 
    

 

즉, 유럽의 승전국들은 독일에게 막대한 배상을 요구한 반면,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14개 조항'을 통해 독일에게 너무 큰 책임을 묻지 말자는 평화주의적인 노선을 택하죠.

 
   

 

미국은 왜 패전국들에게 평화주의적 노선을 관철했을까요? 미국이 착해진 이유가 궁.금.하.ㄷ..

 
   

 

일단, 미국 역사 교과서에는 독일에게 너무 큰 책임을 물리면 또 다른 재앙이 일어날 수 있기에, 윌슨 대통령이 착한 노선을 취했다는 뉘앙스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엔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 분명 미국은 같은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보다 산업, 경제가 발달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에게 한 가지 핸디캡이 있었어요.

 
   

 

그것은 미국의 '식민지'가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제국주의 노선을 미국보다 더 일찍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세계 제국주의 판도에 있어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보다 확실히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 근거로는 당시 아프리카의 식민지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아프리카 영토의 대부분은 근대화에 앞섰던 유럽의 강대국들 소유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세계 최강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광대한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던 유럽의 강대국들을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당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패전국들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지 말자는 골자의 '14개 조항'을 주장했습니다.

 


< 윌슨의 14개 조항 >

이 14개 조항은 전쟁의 근본적 원인들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패전국들에게 너무 심한 비난을 가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리면, 그 나라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될 것이고 그 나라 국민들의 원망을 살 거란 얘기였죠.

또한, 모든 국가는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민족 자결주의'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윌슨의 이 원칙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들을 독립시키려는 미국의 숨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신생 독립국이 많아지면, 거대 자본과 고도로 성장한 미국의 산업이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이 더욱 넓어지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는 역시나 무시되었습니다.

오히려, 영국과 프랑스는 패전국인 독일을 거의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기를 원했죠.

 
   

 

그러던 중,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서는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졌습니다. 이 조약은 독일에게 거의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는데요.

 
   

 

독일은 안 그래도 전쟁을 치르느라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있었는데, 연합국은 독일에게 1,320억 마르크를 배상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는, 마치 사채업자가 채무자에게 평생 일을 해도 갚기 힘든 돈을 요구하는 것과 유사했어요.

 
   

 

그리고 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전 세계는 얼마 가지 않아 또 하나의 재앙(2차 세계대전)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의 의견이 베르사유 조약에 반영되지 않았던 것으로 볼 때, 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시기만 하더라도 미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그리 높지 않았음을 알 수 있죠.

 
   

 

미국은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막대한 양의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도 승리했죠. 그러나 미국인들의 속마음은 그리 편하지 못했어요.

 
   

 

그 이유는, 바로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고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공산주의는 사유재산을 부정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국가의 토지와 산업을 소유하여 국민들에게 분배해주는 체제를 목표로 삼고 있죠.

 
   

 

하지만 공산주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전제주의 정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지도자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형태를 띠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던 미국 사회는, 혹시라도 미국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우려했어요.

 
   

 

왜냐하면, 당시 미국은 많은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가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사회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가는 크게 오른 반면, 노동자들의 임금은 그렇지 못했죠.

 
   

 

그래서 미국 정부는 소위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로 인해, 미국 사회에는 공산주의를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죠.

 
    

 

한편 1900년대 초기, 미국 땅에서는 흑인들의 '대 이주'가 일어났습니다. 20세기 초에만 하더라도, 미국 내 흑인의 약 90%는 여전히 노예 제도를 유지하고 있던 '남부'에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군수 산업이 발전하면서 북부에 수많은 공장들이 들어섰습니다. 그로 인해, 흑인은 인종 차별도 적고 일자리도 얻을 수 있는 북부로 향했습니다.

 
   

 

1910년대, 북부로 이주한 흑인 이주민 그래프입니다. 남부 지역에 있던 흑인들이 시카고, 뉴욕,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등으로 대규모 이주를 한 것을 알 수 있죠.

 
   

 

특히 디트로이트의 경우, 1910년의 흑인 인구는 약 5,700명이었는데 1920년에 4만 명을 돌파했고, 대공황이 시작된 1929년에는 12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1919년 1월 16일.
미국은 기상천외한 법을 제정합니다. 바로 그 유명한 '금주법'이었는데요.

  
   

 

그 내용은 '술을 만들어 파는 모든 행위를 금한다'는 것이었어요. 오늘날 관점으로 보면, 꽤나 말도 안 되는 법이죠. 미국은 왜 금주법을 시행했을까요?

 
   

 

1800년대 초·중반, 속칭 카우보이 시대의 미국 중서부 지방에는 많은 술집이 생겨났는데요.

 
   

 

그래서 과다 음주에 수반되는 각종 범죄와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급기야 1870년대에는 금주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또한, 1874년에는 '반 알코올' 정서를 가진 여성 기독교 절제 연맹이라는 단체가 생겨났죠. 이 연맹은 금주 운동만 벌인 것이 아니라, 여성 참정권 운동도 같이 벌였습니다.

 
   

 

이 연맹은 꽤나 과격한 단체였죠. 실제로, 도끼를 들고 술집들을 부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연맹과 금주 운동가들의 힘으로 금주법(수정 헌법 18조)이 시행됩니다.

 
   

 

미국 정부는 음주로 인해 발생되는 사회 문제나 범죄를 줄이기 위해 금주법을 시행한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이유 외에 진짜 이유가 있었죠.

 
   

 

1910년대에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에는 독일인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이 생겨났습니다. 독일인들은 주로 양조업에 종사하면서 떼돈을 번 경우가 많았는데,

 
   

 

미국 정부는 이런 독일인들의 양조업 행위를 제한하고 싶었기 때문에 금주법을 제정하기에 이르죠.

 
   

 

그렇다면, 금주법은 제대로 시행되었을까요?

 
   

 

제대로 시행되기는커녕 이로 인해 부작용만 자아냈습니다. 금주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미국인들은 음주를 죄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술을 몰래 마셨죠.

 
   

 

결과적으로 금주법은 미국 내 '범죄자'만 득실거리는 상황만 빚어냈어요. 한마디로, 폭망한 법이었죠. 결국, 금주법은 1933년에 폐지됨으로써 막을 내립니다.

 

 

 

 

 

 

 

 

 

 

 

 

 

 

 

 

 

 

 

 

 

 

제가 퍼오는 자료를 제가 작성한 글로 오해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요...

이거 제 명함 밑에 보면 출처를 적어 놓은 곳에서 가져온 자료입니다.

역사에 관심은 많지만 전 이종 스펙 미달이라 이런 글을 작성할 능력이 아니 되옵니다.

저는 그냥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쿨럭

 

 

 

 

 

 

 

 

 

 

 

 

 

 

연재 시리즈

 

 

 

 

1편 미국은 왜 천조국인가? : 한 눈에 보는 미국역사

2편 한 큐에 읽는 미국역사: 신대륙 개척의 승리자는?

3편 천조국 탄생 스토리: 미국의 건국 과정

4편 미국이 11년동안 대통령이 없었던 이유

5편 미국땅이 하룻밤 사이에 2배로 늘어난 이유는?

6편 텍사스 사람들이 유독 자부심이 쎈 이유

7편 아메리칸 드림의 진실: 미국 '서부 개척시대'

8편 그 전쟁이 알고싶다: 미국 '남북전쟁'의 진실

9편 남북 전쟁 그리고 그후, 우리는 노예가 아니에요.  

10편 미국, 세계 최강이 되다: 거대 자본의 탄생 

11편 천조국의 1900년대 역사: 다 비켜! 세계는 내꺼야

 

 

 

번외편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에 대한 스토리

· 야구보다 재미있는 야구의 기원과 역사

· 고자로 살아야 했던 카스트라토 : 파리넬리

 

 

 

 

 

 

 

 

 

 

 

 

 

 

 

 

 

 

 

 

 

 

 

 

 

 

 

브금: Kevin MacLeod - Americana

출처: 피키캐스트 "Curious Park"님

출처 : 이종격투기
글쓴이 : (금연,금주,채식)보우야 하루미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