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全 國民 必讀★
★全 國民 必讀★
利己心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敎育을 通해 國家 魂을 길러야 한다.
獨逸國民은 프랑스를 占領하고 돌아오는 英雄몰트케
(Helmuth Karl B. von Moltke,
1800~1891) 元帥를 熱烈히 歡迎했다.
初等學校 先生님들의 功이다.
이 모든 榮光을 그들에게 돌린다”
美國의 英雄 케네디大統領은 海軍에 들어가 南太平洋 戰鬪에서 큰 負傷을 입었고,
그로부터 얻은 痛症으로 因해 平生 동안 鎭痛劑와 覺醒劑로 살았다 한다.
陸軍將校候補生試驗,海軍將校候補生試驗에 줄기차게 挑戰했다.
아버지는人脈을 움직여 아들을 海軍에 入隊시켰다.
無任乘車者의
資格을 가지고는指導者는커녕 어떤 公職에도 갈 수 없었던 것이
當時 美國社會의 道德律이었다.
1次世界大戰에 砲兵 大尉로 프랑스에서 싸웠다한다.
貴族들과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大學 出身들이라 한다.
바로 이들이라 한다.
바로
이들이었다 한다.貴族과 名門大學 出身의 戰死者比率은
勞動者, 農民보다 倍씩이나 높았다 한몇 다.
물을 떠다주기 위해
한밤중에 벼랑으로 내려가다가 甚한 負傷을 當해 結局 捕虜가 됐다.
美國 및 英國에 比해
相對가 안될만큼 매우 低調했다는 것을 發見하게 되었고,2次大戰에서 日本은 敗할 수 밖에 없는 나라였다고 診斷했다 한다.
執權 與黨인 한나라黨 代表가 된 안상수는
司法試驗으로 身分上昇을 꾀하느라11年 동안이나
逃避하면서 無任乘車를 했으며,
江原知事로 當選된 이광재는 無任乘車를 하기 爲해
멀쩡한 손가락을 斫刀로 잘랐다.
靑瓦臺에 모인
安保無賃乘車者들이 90%나 되었다.前方을 지키는 나라!
이들은 利己主義者들이요.
正義感이 없는 者들이요,愛國心 卽 ‘國家 魂’이 없는 者들이다.
不道德한 者, 利己主義者들인 것이다.
이런 者들이 指導者 자리들을 몽땅 다 차지하고 있는 大韓民國은
敵과 싸울 수 있는 國家인가?
그들의 家族들에게도 最上의 特別待遇를 해주기 때문에
누구든 英雄이 되고 싶어 忠誠을 다한다.
最高의 勳章인 太極武功勳章을 받은 名譽의 勇士가
月 37萬원으로 거지처럼 살고 있다.
日本에서 北의 工作金 가지고 잘 살고있는
骨隨巨物 빨갱이 곽동의에게는 月 100萬원씩 奉養한다.
釜山東醫大에서 警察을 새카맣게 태워
죽인 極烈學生들에게는 數億원씩을 안겨주면서,
때려 죽이고 태워 죽인 軍과 警察을 向해서는 國家暴力輩라 蔑視한다.
最前方
GP에가서 兵士들과 밤을 새우며 警戒勤務를 서는데,그를 對敵한 우리師團長은 파리가 落城할程度로 軍靴를 닦아신고
憲兵처럼 勤務服에 주름을 잡고, 밤이면
部下들과 어울려 爆彈酒 마신다.
술집으로 달려간다는
初級幹部들!
國家아닌 國家의앞날이 걱정스럽다.
곰곰히
생각해 봐야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체조를 의무적으로 했었죠..
국민체조 시작하며 구령소리가 나면 길가다가도 마춰하던 체조
기억나시죠 ? 분명 이런 시절이 우리들에게 있었습니다
청계천 판자촌 뒷골목이라네요..
하꼬방촌 루핑집들
5.60년대 어딜가나 볼수있는 거리와 전경
이 등에 업힌 어린이와 엄마가 빈민국 한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주역들이지요
요사이 TV속 동남아의 가난한 골목같네요
판자촌들 그래도 즐겁게 뛰노는 어린이들
행복하냐고 물어본다면 행복하다고 할겁니다
세계 최빈민국 '방글라데시'가 행복감 세계 일위라고 하는걸 볼때 ...
이 판자촌에도 방을 얻고저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소개해주고 몇푼이라도 벌자고 여기에도 복덕방은 존재 했겠지요 ?
전농동 제방길입니다
이때만 해도 그 알량한 자전거도 흔치않던 시절
어린 시절 추억의 군것질
그래도 벌어보자고 노점상을 차려놓고
가난해도 머리를 상투틀지 못하기에 깍아야하기에
여기에도 이발소는 존재한답니다
이 어린이들이 지금은 나이가 5.6.70대가 되였겠지요
가난하여 학교에 못가는 아이들을 위해 공민중학교 같은곳이 생겨나고
검정고시를 치뤄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지요
지긋지긋한 물지게 지고 나르기
중량천 판자촌 철거시작 그래도 이곳떠나면 어디가서 살라고끝까지 버티고있는 소수에
판자촌 실태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주하여 성남 대단지가 형성됨중량천은 썩을대로 썩어 악취가 만연하고 어느 생명체도 살아있지 않은 하천
요즘 중량천엔 장미꽃이 천국을 이루고 하천엔 잉어떼와 피라미떼들이
다모여 제식훈련을 받고있으니 세상 참 많이 변햇지요 ?니다.
청계천 봉제공장의 누이들..
저 열악한 환경에서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죠..
삽입곡 이미자 노래 영화주제가[저강은 알고있다]원곡입니다
신문잡지 가판대 경찰 단속 중
이때만해도 제법 잘 지여놓은 청량리역앞 대왕코너앞
이건물이 그땐 불도 잘 나드니만 사람도 꽤나죽고
저 시절이 눈에 선한데....
지금은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졌는데그만큼 더 행복해 졌을까요?한번 뒤돌아 봅시다 (옮겨온 글) |
올리버는, <이승만의 진면목은 자신의 신념이 세계의 여론이나 최강국의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경우에도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물>이란 점이라고 했다.
그는 인기에 영합하는 기회주의자가 아니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것조차 개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옳은 방향이라고 마음을 정하면 자신과도 타협하지 않고 비판 여론은 아예 무시하였다. <그는 역사의 길이라고 믿으면 주저없이 나섰고, 뒤 늦게 좇아오는 이들을 기다렸다. 그는 '위대한 정치적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아야 할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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貞節婦人의정문(旌門)
무과에 급제해 부산으로 발령 받아 내려가던
조익 [趙翼, 1579 ~ 1655] 이 밀양에서 날이 저물어 하룻밤을 주막에서 묵어가는데
술을 한잔 하자 불현듯 지난 일이 떠올랐다
‘십여년 전 서당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 박주현의고향이 밀양이었지.
그때 참 친하게 지냈는데….’
밀양에서 뼈대 있는 집안이라 그 집을 찾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대궐같은 박주현의 집 솟을대문을 두드렸다
하인들의 안내를 받아 사랑방에 좌정하자 소복을 입은 젊은 부인이 나와 인사를 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박주현은 한달전에 죽었고 소복 입은 부인은 바로 박주현의 미망인이었다.
안방 옆 곁방에 차려 놓은 빈소에서 조익이 절을 올릴 때 미망인은 섧게 곡을 했다
조익은 박주현의 자취가 담긴 사랑방에서 하룻밤묵어가기로 했다.
촛불을 끄고 누웠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박주현과 함께 천렵과 수박 서리를 하던 때를 생각하며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 보니 삼경이 가까웠다
그때 ‘쿵’ 하고 담 넘는 소리에 이어 뒤뜰 대나무 밭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조익은 잽싸게 문을 열고 나가 기둥뒤에 몸을 숨기고 대나무 밭을 응시했다.
도적이구나!
그런데 대나무 밭에서 나온 도적이 처마 밑으로
몸을 숨겨 안방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안방에 촛불이 켜졌다.
조익은 뒤뜰로 가 열어 놓은 들창으로 안방을 들여다봤다
이럴수가!
“오늘밤은 소복을 입으니 더 예쁘네 잉.” 땡추가 미망인을 껴안고 있었다.
목소리를 낮추라며 손가락으로 땡추의 입을 막은 미망인은
부채로 화롯불을 살려 석쇠를 올리고 그 위에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미망인이 미리 차려 놓은 주안상을 당겨 약주를 따랐다
한잔 마신 땡추가 입을 벌리자 미망인은 석쇠 위의 고기 한점을 입에 넣어 준다.
번들번들 개기름이 낀 땡추는 윗옷을 풀어헤치고 비스듬히 보료에 기대어 한손엔
술잔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미망인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고기 안주에 술이 얼큰해진 땡추가 미망인의 옷고름을 풀었다
미망인이 코맹맹이 소리로 “잠깐만. 상 치우고 올게요.”
하며 부엌으로 나가자 조익은 끓어오르는 분을 참을 수 없어
옷 속에 품고 다니던 장도를 꺼내 들창 안으로 던졌다
땡추가 목덜미에서 선혈을 쏟으며 고꾸라지는 것을 보고
조익은 잽싸게 사랑방으로 돌아갔다
잠시후 안방에서 미망인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집안의 하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날이 새자 밀양 관가에서 형방과 나졸들이 나오고
친인척도 몰려와 집안이 어수선 해졌다.
조익은 모른 척 행랑아범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간밤에 미친 땡추가 상중의 안방마님을 겁탈하려고 들어왔다가
안방마님의 장도에 찔려 죽었습니다
안방마님은 자살하려는 걸 저희들이 막았습니다.”
이듬해 다시 밀양땅에서 하룻밤 묵게 된 조익이
박주현의 집을 찾았더니
집 앞에 정절부인에게내리는 정문(旌門)이 세워져 있었다
조익이 친구 집안의 명예를 살린 것이다
= 옮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