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데 고야 Francisco de Goya. [죽음이 올 때까지]Time of the Old Women. c. 1810-12. Oil on canvas, 181 x 125 cm. Musée des Beaux-Arts, Lille, France.
죽기 바로 직전까지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의 본성은 무얼까? 저승사자에게 뒷덜미를 낚아채이는 순간까지 사랑에 대한 몽상과 우울에 시달려야 하는 여인들의 사랑은 진실일까? 거짓된 위선일까?
죽음이 올때까지 거의 죽을 때가 다 되어 버린 한 노파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부의 옷차림을 하고 화려한 다이아몬드 장식을 온몸에 두르고는 거울을 보고 있다. 뒤에서는 저승사자가 금방이라도 그 노파를 데려가려는 듯 인상을 쓰고 있지만, 노파는 빨갛고 음란한 눈을 한 채 아무래도 자신의 모습에 빠져 있는 듯하다. 스페인 화가 고야의 <죽음이 올 때까지>는 죽기 바로 전까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본성을 잘 그리고 있다.
죽음에 직면한 피골이 상접한 노파가 화려한 신부 옷차림을 하고 온통 다이아몬드를 몸에 걸친 추괴(醜怪)한 모습으로 해골같이 생긴 시녀가 내민 거울을 보고 있다. 그 거울 뒷면에는 '어떻습니까?'라고 씌어져 있다. 두 사람의 뒤에서는 빗자루를 치켜들고 금방 내려칠 듯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날개 돋친 염라대왕의 사자가 습격하려는 절박한 순간을 볼 수 있다. 노파가 머리에 얹은 화살표의 다이아몬드는 <카를로스 4세 가족>이란 작품의 왕비의 머리에 꽂은 물건과 같다. 그 물건은 재상인 애인 고도이에게 증정한 것이라 한다. 노파의 빨갛게 그려진 눈을 음란한 욕망을 상징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 시대상을 풍자한 고야의 비유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작품의 회화성에 있어서도 우수한 작품이다.
Francisco Goya , [카를로스 4세 가족]Family of Carlos IV 1800-01,Oil on canvas, 280 x 336 cm, Museo del Prado, Madrid
고야의 또 다른 그림 <카를로스 4세의 가족>. 고야를 스페인 궁정화가로 임명해 준 카를로스 4세를 위해 고야가 그린 단체 가족 초상화. 약간은 겁에 질린 듯한 왕자들의 표정과 멍청한 왕의 표정 그리고 잔뜩 폼을 잡고 있는 루이사 마리아 왕비의 천박한 모습 등 증명사진 스럽지 않고 스냅사진 같은 특이한 그리고 고야 자신의 얼굴까지 들어가 있는 약간은 유쾌한 초상화이다.
죽어 가는 노파의 그림과 왕실의 초상화라는 전혀 다른 이 두 그림 사이에 고야가 그렸다는 것말고 과연 어떤 연관이 있을까? 게다가 ‘연가’라는 주제를 다루는 이 지면에 이런 그림이 들어온 이유는 더더욱 무얼까? 해답은 죽어 가는 노파와 왕비가 머리에 하고 있는 다이아몬드 머리 장식에 있다. 자세히 보면 두 보석은 같은 것. 그럼 왕비의 머리장식이 어떻게 해서 다 죽어 가는 찌그러진 노파의 수중에 들어갔을까? 아무리 봐도 그 노파가 왕비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왕비가 팔았을 리는 만무하고, 노파가 훔쳐 온 것이거나 도둑맞은 것을 샀을 수도 있겠고… 어느 날 본 그 머리 장식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똑같은 모조품을 만들었을 수도 있고…. 정답은 정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 주는 정표. 떠나는 님에게 나를 잊지 말고 항상 생각하라고 뜯어 주는 옷고름이며, 하룻밤의 사랑이라도 영원히 기억하리라 뽑아 주는 생이빨 같은 ….
루이사 마리아 왕비의 다이아몬드 머리 장식은 왕비의 정부였던 재상 고도이에게 왕비가 정표로 준 물건이고, 고도이의 수중에 들어갔던 그 물건이 <죽음이 올 때까지>의 주인공 노파에게 전해졌던 것. 불륜의 관계이지만 사랑을 믿고 정표를 준 왕비가 이 사실을 알면 황당하겠지만, 재상 고도이의 입장에서 보면 정이 가면 주는 것이 정표이니 새로 생긴 연인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데는 왕비가 준 물건인들 대수였겠는가? 다 죽어 가는 그 노파도 젊었을 때는 왕비와 사랑을 다툴 정도로 절세의 미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궁정화가 생활을 오래하면서 상류사회의 위선적 애정행각을 쭈욱 보아 온 고야가 ‘사랑? 그걸 너는 믿니?’ 하며 비웃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